Toward New Investment Paradi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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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조원의 개척자들] (2) 은행원에서 6300억 PEF 대표로…유현갑 케이스톤 대표

진상훈 기자(조선비즈)
입력 : 2015.08.10 06:15 | 수정 : 2015.08.10 07:16

지난 2012년 금호산업 (17,100원▼ 150 -0.87%)은 금호고속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6,490원▼ 90 -1.37%)등 핵심 자회사 3곳을 한꺼번에 묶어 매물로 내놨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잇따라 사들이며 몸집을 불렸지만, 이후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에 건설경기 악화가 맞물리며 결국 재무 위기를 겪게 됐기 때문이다.

그해 8월 금호산업으로부터 이들 3개 자회사를 사들인 곳은 IBK투자증권과 사모투자펀드(PEF)인 케이스톤파트너스로 이뤄진 컨소시엄이었다.

당시 바이아웃 투자(기업 인수 뒤 가치를 높여 재매각해 차익을 얻는 투자방식)에서 이름조차 낯선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PEF가 대기업의 핵심 자회사 3곳을 묶어 인수하는 대규모 ‘패키지 딜’의 최종 승자가 된 것은 큰 화제가 됐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난 올해 6월 IBK-케이스톤 컨소시엄은 3310억원에 인수했던 금호고속 지분 100%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4150억원에 재매각했다. 최초 매입가격 대비 25% 이상의 수익률을 거둔 것이다.

◆ 메자닌·부실채권 투자로 성장한 PEF 업계 새 별

 

갑 케이스톤파트너스 대표/진상훈 기자

지난 2007년 설립된 케이스톤파트너스는 주로 금융상품과 기업 지분에 대한 자기자본 투자(PI), 구조화금융 컨설팅 사업 등을 통해 성장한 뒤 바이아웃 투자에 뛰어든 PEF다. 지난 6월말 기준 케이스톤의 출자약정액 규모는 6260억원을 기록 중이다.

설립 첫 해 케이스톤이 주력한 분야는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갖춘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 등을 사들이는 메자닌 투자였다. 주식에 비해 목표수익률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안정성을 갖추고 있어 설립 초기의 소규모 PEF가 투자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케이스톤이 높은 수익률을 얻으면서 바이아웃 투자로 가기 위한 ‘실탄’을 확보한 것은 부실채권(NPL) 투자에 나선 이후부터다. NPL 투자는 실적 악화 등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의 채권을 싼 값에 인수한 뒤 기업이 회생하면 높은 차익을 얻는 투자방식이다.

케이스톤은 2008년 우리스트림 채권에 29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09년에는 한일월드와 케이에스피 등의 NPL에도 투자해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자본금 10억원으로 출발한 케이스톤은 설립 5년만에 100억원 가까운 자기자본을 갖춘 PEF로 성장했다.

케이스톤은 2012년 금호고속 M&A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이아웃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2013년 골프존과 손잡고 태양시티건설 소유의 골프장을 인수해 기존 회원제 운영방식을 일반 퍼블릭골프장 운영체제로 바꾸는 등 경영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13년 말에는 ‘성장사다리 재기지원’ 펀드의 운용사로 선정돼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한 뒤 우창공업과 인성글로벌, 코스모화학 등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들에 투자하기도 했다.

PEF 업계 관계자들은 메자닌과 부실채권, 그리고 바이아웃 투자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케이스톤이 눈에 띄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은행원을 거쳐 PEF로 입성한 유현갑 대표의 독특한 이력과 업무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 좌절된 MBA 진학, 해외투자 고전…성공 밑거름 된 실패의 경험

유현갑 대표는 IMM PE의 송인준 대표와 지성배 대표, 김영호 수석부사장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공인회계사 출신 ‘토종파’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특히 대부분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공대나 법학 전공자들이 많은 PEF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수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연세대 수학과를 다니던 유 대표가 회계사를 진로로 선택한 이유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경영학이나 경제학보다는 순수과학이나 인문학 등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지방 출신으로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해 가늘고 길게, 그리고 일반 기업체에 비해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잡아야만 했다.

1994년 삼일회계법인에 들어간 후 감사와 세무, 기업재무 컨설팅 등의 업무를 거치면서 그는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된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내에 해외 MBA(경영학석사) 열풍이 불면서 유 대표 역시 더 높은 급여와 파트너 승진을 위해 미국 MBA 입학을 결심하게 된 것.

그러나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던 미국 유학은 결국 좌절되고 만다. 1997년 외환위기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예상했던 미국 유학비용이 두 배 가까이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집안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터에 회계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당시 2년간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 대표가 유학의 꿈을 접고 6년간 일하던 회계법인을 떠나 본격적으로 투자 관련 실무를 시작한 것은 2000년 KTB네트워크에 입사한 이후부터다. KTB네트워크에서 맡은 업무는 해외투자팀장.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망 중소업체들을 선별해 투자를 하는 업무였다.

그러나 KTB네트워크에서의 해외투자 업무는 결과적으로 씁쓸한 결과를 낸 채 막을 내렸다. 당시 IT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된 유망기업들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고, 지분을 투자한 업체들 중에서도 상장에 실패해 돈을 날린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광통신 기술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나스닥 상장이 눈 앞에 보였던 한 국내 IT 업체는 상장을 앞둔 시점에서 ‘와이파이(WiFi)’를 비롯한 무선 인터넷 보급이 빨라지면서 결국 좌초하기도 했다.

유 대표는 “미국의 상장예정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주로 미국의 벤처캐피탈(VC)들이 다수 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결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후 잘 알지 못하는 업종이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운 형태의 투자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투자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 PEF 설립 발판 된 조흥은행…금융상품 투자와 M&A를 배우다

유 대표가 메자닌과 부실채권 투자, 바이아웃에 이르기까지 PEF에서의 모든 실무를 배운 것은 회계법인이나 자산운용사가 아닌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서의 4년 동안의 근무 경험을 통해서였다.

KTB네트워크에서의 실패 이후 절치부심하던 그는 세번째 직장으로 들어간 조흥은행의 M&A 팀에서 기업의 인수자금을 조달해 주는 인수금융과 부실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에 투자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에 자금을 대출하는 일을 했다.

2004년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9,090원▲ 10 0.11%)인수 과정에서 4300억원 규모의 대출, 이듬해인 2005년 두산중공업의 대우종합기계 인수 당시 8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조달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4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던 대한전선의 진로 부실채권 투자와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의 진로 지분 매입 당시 인수금융에도 참여했다.

조흥은행 M&A 팀장으로 4년여간 쌓은 인수금융과 부실채권 투자 경험은 케이스톤 설립 후 첫 바이아웃 투자였던 금호산업 패키지 딜의 투자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 모험이었던 금호고속 투자

사실 소규모 PEF인데다, 이렇다 할 바이아웃 투자 경험도 없는 케이스톤에게 대기업인 금호산업의 3개 자회사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은 모험이었다. 게다가 지분 100%를 사야하는 금호고속의 경우 국내 고속버스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어 실적 개선이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도 많았다.

그러나 조흥은행에서 대규모 인수금융 업무를 담당하며 대기업들의 M&A 방식과 명분 등을 잘 알고 있던 유 대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언젠가는 그룹의 모태인 금호고속을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다시 매입할 것으로 확신했다.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난해 8월 IBK투자증권과 케이스톤 컨소시엄이 금호고속의 재매각을 발표한 이후, 우선매수권을 가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다른 PEF들에 매입에 나서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금호고속을 다시 사들이는데 나섰다. 재매각 과정에서 양 측은 매각 가격을 놓고 대표이사 해임과 법정 공방 등을 벌이며 극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초 매각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에 금호고속을 되샀다.

PEF 업계에서는 케이스톤이 금호고속의 재매각 시점을 정확하게 잡은 것도 성공적인 자금 회수의 요인이었다고 평가한다. 한 대형 PEF의 고위 관계자는 “만약 금호고속의 매각이 올해로 늦춰졌다면 호남고속철도 개통으로 고속버스 탑승 수요가 감소해 기업가치가 상당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한 발 앞서 지난해부터 재매각에 착수했기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투자의 핵심 포인트 : 왜 이 회사가 매물로 나왔는가?

금호산업 패키지 딜의 성공 이후 케이스톤은 바이아웃 투자에 한층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설립 후 많은 수익을 냈던 부실채권 투자가 이전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얻을 만한 투자대상이 줄어들고 있어 더욱 바이아웃 투자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 대표는 성급하게 새로운 먹잇감을 찾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PEF 업계에서 인수할 만한 기업을 찾기 힘든 ‘딜 기근’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나 투자를 주도할 수 없는 곳에서의 M&A는 하지 않는다는 투자원칙을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유 대표는 인수대상 기업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업종이나 판매제품이 아닌, 왜 이 회사가 매물로 나왔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만약 매물로 나온 기업이 같은 업종 내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거나, 고질적인 재무 부실 요인을 갖고 있다면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로 의류나 아웃도어, 신발 사업 등의 경우 몇 년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지만, 유행을 계속 따라잡기 어렵고 고질적으로 재고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 인수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경영진의 판단 착오나 실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모그룹의 사업부 재편 등으로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워진 회사 등은 눈여겨 볼 만하다고 했다. 특히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다양한 납품처를 확보해 꾸준히 실적을 유지하는 제조업체 가운데 자녀가 가업 상속을 거부해 대주주가 매물로 내놓은 회사들은 가장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특정기업을 인수한 뒤 4~5년 이상 경영을 유지해도 실적 개선에 성공하지 못해 재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PEF들이 많다”며 “바이아웃 투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려도 신중하게 투자대상을 선별해 안전하게 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관리하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